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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時 [거룩한 식사] _ <순대일번지>에서 혼밥 하는 남자

by 흰수염 고래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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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순대일번지>에서 혼밥하다.

3월은 역시 봄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은 어쩔 수 없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불어오는 바람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이 겨울이 이제 지나갈 모양입니다.

 

벌써 회사를 나오고 백수로 지내온지 1년이 되어갑니다.

 

오전에 집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볍게 운동도 하고선 집을 나섰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합정동 교보문고에 들러 신작과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경제 경영 코너의 책들과 관심 가는 제목의 책들은 목차 위주로 살펴보았고, 관심가는 책들은 잠시 앉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듯 읽어보았습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추천작이었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간의 경비원입니다] 책이 눈에 들어와서 사들고 나왔습니다. 사서 읽지 않은 책들도 집에 많은데 또 책꽂이에 책들만 쌓는 것 아닌지 걱정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읽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 가는대로 사버렸습니다.

학교 가는 딸 아이 차려준 김에 먹은 아침 덕에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지만, 지나온 순대국집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워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망원동의 <순대일번지>으로 수요미식회에도 나왔던 동네 오래된 맛집입니다. 친구들과도 가끔 들러 저녁에 모듬고기와 술국에 한잔 하는 곳이기도 한데, 오늘은 순대국으로 혼밥하러 갔습니다.

 

얼큰한 다데기 국물에 순대보다 수육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순대국 특이 11,000원으로 보통보다 1천원 차이라서 배는 그리 고프지 않지만 머시라구하며 특을 주문했습니다. 나는 맑은 국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얼큰한 국물과 깻잎과 어우러진 다양한 수육이 많이 들어있어 참 맛있습니다.

황지우 시인  [ 거룩한 식사 ]

혼자 밥을 먹다보면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가 떠오릅니다.

 

시에 나오는 나이든 남자가 나와 같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살을 빼려고 아침에 운동을 하고서 서점에 둘러 여유자적하다가 순대국을 특으로 먹고있지만 혼밥이 주는 외로움과 낯설음 때문이었겠지요.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가게를 나와 옆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보는 나의 심정과 같지 않겠지요. ‘먹는 일의 거룸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을 위해 한 그룻 뚝딱 했습니다. 셀프로 덜어둔 김치와 깍두기도 다 먹고나니 얼굴에 땀과 열이 나서 후딱 봄이 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금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 를 읽어봅니다.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품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리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룸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어느 날 나는 흐림 주점에 않아 있을 거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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